창립취지문

춘천생활협동조합 창립취지문

1995년 5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한 사람의 농민과 춘천시내 소비자 네 가족이 모여 유기농산물을 나누는 것을 고리 삼아, 서로 돕고 나누는 유기적 관계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방주공동체가 오늘 춘천생활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유기적 관계의 핵심은 나눔과 도움입니다. 서로 협동하고 협력하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오직 경쟁만이 최고의 가치인양, 인간과 인간 사이에 경쟁 말고는 아무 것도 다른 할 것이 없는 것처럼 모든 사람을 경쟁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과정에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하는 살 맛 떨어지는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기 춘천생활협동조합으로 모인 사람들은 좀 그러지 말자는 것입니다. 옆으로 조금만 비켜서서 서로 돕고 나누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나누는 출발은 이렇습니다. 농민은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 생명력 넘치는 건강한 먹을거리를 만들어 내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이 농산물을 사서 먹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그러나 이 간단한 일이 쉽지 않습니다. 마음을 서로 나누지 않으면 이렇게 간단한 나눔조차 성립되지를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선 농민 편에서 보자면, 유기농업이라는 것이 수지타산이 안 맞는 일입니다. 어디 유기농업뿐이겠습니까. 모든 농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회에서 농민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우선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제초제나 농약, 화학비료 등을 거부하고 생명을 기르고 살리는 유기농업의 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도시 소비자 편에서 보자면, 유기농산물은 한 마디로 경쟁력이 없는 물건들입니다. 우선 비싸고 모양도 대개는 볼품없고 무엇보다도 구하기가 아주 불편합니다. 대형마트에 가면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원하는 걸 언제든지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눔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언제나 부족하고 미리 계획을 세울 것을 강요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물건을 나누는 것만으로는 되지를 않습니다. 서로 이해하는 마음, 고마운 마음을 나누어야 이 나눔이 됩니다. 시간을 할애하고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이렇게 작은 나눔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또 되지를 않습니다. 산성비가 저 남쪽 울산에만 내리고 여기 북쪽 춘천에는 안 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루 한 명 이상의 농민이 농약 중독으로 죽어가고, 하루 한명 이상의 아이가 성적비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연과 사회가 내지르는 고통스러운 비명에 귀 막고 눈 돌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서로 나누고 돕는 진정한 생활공동체를 지향합니다. 우리의 모임은 작지만 우리가 내뿜는 향기가 아름답다면, 더 많은 사람이 우리들의 소리에 마음 기울일 것입니다. 어려움도 있겠지만 함께 나누며 간다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입니다. 느리고 더디더라도 다 함께 도우며 갑시다.

2001년 11월 24일 춘천생협 발기인회